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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객반위주’와 ‘인사 쿠데타’

농협중앙회-금융지주, 이례적 ‘인사 갈등’에 우려
“금융당국까지 나서 ‘강호동 체제’ 흔들기” 해석도
‘인사 공감대’ 형성 과정에 과잉·과민 반발 말아야
이승욱 기자 2024-04-26 10:00:04
농협중앙회(사진 왼쪽),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인 농협은행 전경 /각사 제공

객반위주(客反爲主) 


나그네가 오히려 주인이 되는 ‘황당한’ 상황을 묘사한 사자성어다. 지위나 입장이 순리에 맞지 않게 되레 뒤바뀐다는 의미다. 

이는 강호동 신임 농협중앙회장 취임 후 벌어진 중앙회와 금융지주 간 ‘인사 갈등’을 놓고 하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까지 개입한 이번 인사 갈등 논란이 사실상 노골적인 ‘강호동 체제 흔들기’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신임 중앙회장 취임 후 첫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수장 인선이었던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출은 그러한 점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사내·외 이사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추려낸 숏리스트 3명 중 1명을 최종 낙점했다. 

윤병운 NH투자증권 사장은 전형적인 ‘증권맨’이다. 당초 역시 증권맨인 정영채 전 사장이 3연임 하며 ‘장기 집권’을 해온 터라, 신임 중앙회장 취임 후 이뤄지는 첫 금융지주 계열사 인사에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기류가 일정 정도 반영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또 농협은 2012년 신용(금융)사업과 경제(유통)사업, 즉 ‘신경분리’ 이후에도 금융지주와 계열사 인사에 공감대를 나눠온 만큼, ‘변화와 쇄신’을 강조한 신임 중앙회장 체제 하에서 인사 쇄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증권맨의 경영 승계’였다. 농협중앙회를 넘어 농협 전반에 대대적인 혁신을 전파하려 했던 강호동 체제도 발목이 잡힌 형국이 됐다. “신임 중앙회장이 취임하자마자 리더십에 생채기를 내도록 한 셈이 됐다”는 말이 내부에서 나올 정도였다.

인사 갈등 논란이 역대 회장 때와는 달리 극단적인 양상으로 번졌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금산(금융·산업자본) 분리’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는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농협의 특수성을 고려해 중앙회장의 심중이 반영되는 ‘인사 공감대’가 관례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금융지주에서 일해본 중앙회 출신 한 인사는 “그동안 농협금융지주 계열사 인사에서 이른바 ‘농협맨’ 낙하산 논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새 중앙회장이 취임한 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대외적으로도 논란이 확대될 정도로 한 것을 보면 이번 반발을 사실상 내부 쿠데타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이 당선된 뒤 금융당국이 해당 이슈에 신속하게 개입한 것 역시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강 회장 취임 직전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 계열사에 대한 수시 검사와 정기 검사를 진행했다. 

금감원 검사는 애초 농협금융지주의 굵직한 대형 금융사고로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금감원 검사는 돌연 농협중앙회의 인사 개입 논란에서 농협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지배구조 논의에까지 일순 번졌다. 금감원은 ‘지배구조 모범 관행 가이드라인’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인 농협중앙회가 손자회사의 대표임원 선정 과정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검사 표적으로까지 삼겠다는 것 자체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놓는다. 

농협 내부에서 소통을 하며 해소할 사안에 과민하면서도 과도하게 대응해 ‘신(新)관치’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간 노골적인 ‘거리두기’가 내부 갈등을 증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 기업’ 농협의 방향성 상실, 금융지주 내부 자정력 저하, 특정 세력의 기득권 공고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인사 갈등 진원지였던 NH투자증권은 2014년 이후 10년째 ‘독립경영’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횡령 사건이나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등 각종 금융사고에 휘말리며 소동을 겪어 왔다. 

더욱이 옛 우리투자증권 출신인 전·현직 사장이 연이어 사실상 ‘경영 승계’를 했다는 점에서 내부 반발 기류도 있다.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는 ‘태생적으로’ 상호보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농협금융지주는 경제지주에 비해 농업지원사업비(명칭 사용료)를 10배 이상 부담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농협이라는 기존 기반을 토대로 농협금융지주가 성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농촌과 농민, 서민경제 위기 속에서 농협은 17년 만에 전국 농협조합장 1천111명이 참여한 ‘직선제’ 방식으로 새 중앙회장을 선출했다.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을 표방하며 농협중앙회가 내세운 변화와 혁신의 청사진이 긍정적 결과로 이어질지 기대감이 커지는 시기다. 출범 초기부터 인사 갈등 논란을 키우며 ‘흔들기’나 ‘옥죄기’를 해야 할 시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객반위주의 우(愚)가 불러올 결과에 대해 곱씹어 볼 순간이다.


총괄에디터 겸 금융·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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