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문학적인 수사 또한 뛰어난 노랫말이었다. 색시를 ‘새악시’라고 하고, 옷자락이 눈물에 젖은 것을 ‘아롱진 옷자락’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라는 2절 가사 또한 주목할만한 시적 서사이다. 여기에 곡을 붙이고 음반 취입이 이루어졌다. ‘목포의 눈물’ 멜로디는 사실 작곡가 손목인이 가수 고복수를 위해 이전에 만들어놓은 ‘갈매기 항구’라는 곡이었다.
그런데 오케레코드사 이철 사장이 문일석의 작품을 확보하면서 노랫말을 변경한 것이 불후의 민족가요로 거듭난 것이다. 목포 출신인 18세의 무명 가수 이난영의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가 발표되자, 일제에 억눌려있던 민족정서가 분출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레코드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황한 일제는 2절 가사의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를 문제 삼아 레코드 발매를 금지시켰다.
임진왜란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그래서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으로 수정하고, ’삼백연 바람이 편안하게 분다‘는 뜻이라고 둘러대며 총독부의 검열을 피하는 소동을 겪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중은 ‘삼백년 원한 품은’으로 부르며 망국의 정한과 이별의 슬픔을 달랬다. 남인수의 대표곡 ‘애수의 소야곡’ 선율도 원래는 박시춘이 작곡한 ‘눈물의 해협’이라는 곡이었다.
대중의 반응이 미미하자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이부풍(본명 박노홍)에게 요청해서 가사와 제목을 바꿔 재취입한 것이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으로 시작하는 불멸의 세레나데 ‘애수의 소야곡’은 그렇게 부활한 것이다. 이 노랫말 또한 '휘파람 소리' '구슬픈 이밤' '못생긴 미련' '애타는 숨결' 등 별리(別離)의 정조를 함축한 우리말 고유의 시적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중의 주목을 끌지 못한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면서 히트곡이 된 사례는 1970,80년대까지 이어졌다. 조용필의 출세작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그렇다. 원곡은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가요였는데, 노래를 부른 가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작곡가 황선우가 가사를 손질하고 제목도 고쳐서 조용필에게 건넨 것이다.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모국방문이라는 시절 인연도 한몫을 했다.
가사의 끝 부분 ‘그리운 내 님이여’라는 연가풍의 노랫말을 ‘그리운 내 형제여’로 헤어진 혈육을 그리는 감성 포인트로 바꾼 까닭이기도 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산에서 흥행하며 전국을 강타했다. 무명의 설운도를 국민가수로 부상시킨 ‘잃어버린 30년’도 원곡은 이미 취입을 끝낸 남국인 작곡의 ‘아버님께’라는 노래였다. 그런데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특별 생방송’이 운명을 바꿔놓았다.
아닌 밤중에 복(福)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한반도 전역을 눈물로 얼룩지게 하는 생방송의 주제곡이 절실하다는 요청을 받고 하룻밤 사이에 가사를 ‘잃어버린 30년’으로 바꾼 것이다. 노래는 재취입한 그날 저녁 이산가족찾기 방송의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왔다. 설운도는 가사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잃어버린 30년’은 그렇게 녹음 후 최단 시간에 히트한 곡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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