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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24>봄이 오는 소리

얼음장 녹아나며 쩍쩍쩍 금을 긋고
시냇물 풀려나며 졸졸졸 흥얼대니
사람들 봄 오는 소리에 감격하며 와와와!
한양경제 2025-02-17 09:39:37
눈과 얼음이 녹고 물이 흐르고 있는 2월 계곡의 모습. 이효성

모든 계절은 다 소리로 먼저 온다. 

계절이 바뀌는 징후는 빛깔로도 나타나지만 그보다는 소리로 나타나는 것이 더 먼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무논에 개구리 울음소리가 낭자하고 산에 소쩍새 소리 구슬플 때면 어느 덧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나무에서 매미 소리가 시끄럽고 풀에서는 각종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고 특히 귀뚜라미의 처량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오게 된다. 찬바람이 나뭇가지나 전선에 부딪히며 윙윙 소리를 내거나 기러기가 꺼이꺼이 울면서 ‘ㅅ’ 대형으로 날아오면 이미 가을이 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온다. 

소리로 먼저 오기는 봄도 마찬가지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때도 빛깔보다는 소리로 먼저 그 징후가 나타난다. 사실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야말로 소리로 먼저 그 기미를 느낄 수 있다. 이월 하순이 되어 해빙이 시작되면 얼어붙었던 방죽이나 연못이나 논에서 저절로 쩍쩍 얼음 금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우내 꽁꽁 얼어 흐르지 못하던 시냇물도 해빙이 시작되면 다시 졸졸 흐르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봄은 소리로 먼저 온다고 할 수 있다. 

“얼음 풀린 먼 산머리/흥얼대는 봄의 소리/./잔잔히 흐르는 강물/여울 소리 봄 소리.”[김준, 〈봄 소리〉 중에서]. 

이 해빙의 소리야말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최초의 봄의 전령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청각은 개의 그것보다는 덜 민감하지만, 인간도 시각보다는 청각에 더 민감한 편이다. 특별히 소리에 더 민감한 사람이라면 또는 봄을 고대하던 사람이라면,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을 뿐만 아니라 그 소리를 듣자마자 대지가 눈으로 덮여 있을지라도 또는 대지가 아직은 아무리 황량할지라도 겨울이 물러가고 대신 봄이 오고 있음을 바로 알아챈다.  

“봄밤을 지새우면/천 리 밖에 물 흐르는 소리가/시름 풀리듯/내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다.//깊은 산악마다/천둥같이 풀려나는/해빙의 메아리/새벽안개 속에 묻어오는/봄소식이 밤새 천리를 간다”[박리도, 〈해빙기〉 중에서.  

소리에 민감한 귀에 해빙의 메아리는 확실하게 봄의 내도를 알리는, 진군나팔소리만큼이나 커다랗고 뚜렷하고 우렁찬 소리인 것이다. 

봄은 낙숫물 소리로도 온다.
2월 중순 끝에 드는 우수는 동지로부터 60일이 지난 때여서 햇볕이 제법 세진 시점이다. 그래서 해빙의 소리가 들리는 2월의 어느 즈음이면, 지붕의 눈이 녹아 낙숫물이 되어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며 소리를 낸다. 그 떨어지던 낙숫물이 밤이 되면 고드름으로 얼었다가 다음날 햇볕에 쪼이면 녹으면서 지붕에서 녹아내린 눈물과 함께 더 크게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햇볕이 더 센 경우에는 고드름 자체가 약해져서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털썩 떨어지는데 이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도 가세하여 봄이 오고 있음을 고지한다. 여기에 언뜻언뜻 불어오는 훈풍을 반기는 듯한 요란한 박새, 굴뚝새, 까치 등의 새소리도 가세한다. 참새들은 마당까지 찾아와 짹짹거리고, 기러기 떼가 끼륵끼륵 소리를 내며 일렬종대로 북쪽으로 날아간다. 

봄은 또한 훈풍에 실려 움이 트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로도 온다. 봄바람은 남녘의 향기를 싣고 물이 올라 잎눈과 꽃눈이 부푼 여린 가지들을 스쳐 살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와 우리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러한 봄의 실바람 소리는 “부드러운 바람이 잠에서 깨어,/속삭이고 살랑거리면서 밤낮으로,/불어오네 온 사방, 사방에서./오 신선한 향기, 오 새로운 소리!/이제, 가엾은 마음아, 두려워 말라!/이제 모든 것,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라는 독일 낭만주의 시인 요한 루트비히 울란트의 시 〈봄의 믿음(Frühlingsglaube)〉이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같은 이름의 가곡이 봄을 맞는 음악으로 잘 연주된다. 

이 곡과 함께 새봄을 맞는 설레는 마음에 호소하고 그런 마음을 고양시키는 음악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봄은 음악 소리로도 온다. 그 가운데 “앞강의 살얼음은/언제나 풀릴 거나/짐 실은 배가 저만큼/새벽안개 헤쳐 왔네”로 시작되는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 임긍수 곡)이라는 가곡과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봄이 찾아온다네/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로 시작되는 〈봄이 오는 길〉(김기웅 시, 박인희 곡)이라는 가요가 라디오에서 많이 들려온다.  

그러나 역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불리거나 연주되는 유명한 곡은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경쾌하고 흥겨운 〈봄의 소리의 월츠(Frühlingsstimmen)〉일 것이다. 기악곡으로 많이 연주되지만 성악곡으로도 많이 불리는데 리하르트 게네가 쓴 그 가사는 “종달새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따사롭게 불어오는 바람은/행복과 온화함을 싣고 불어와/대지에 입을 맞추네/봄은 수려하게 깨어나고/모든 고통은 끝나고/모든 아픔은 멀리 도망가죠”로 시작된다. 조수미가 부른 것이 일품이다. 

겨울을 맞으면서부터 우리는 마음속으로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실제의 봄이 오기 전에 우리 마음은 먼저 봄을 맞고 있다. 그러나 감각에 의해 우리가 실제로 맞는 봄은 먼저 그 소리에 의해서다. 이들 봄이 오는 소리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얼음에 금이 가고 시냇물이 흐르는 해빙의 소리를 필두로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 녹아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봄을 알아채고 요란하게 지저귀는 텃새들의 봄맞이 소리, 움이 트려는 나뭇가지들을 흔들어대는 봄바람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고 반가운 봄을 맞는 음악 소리로 우리는 먼저 실제의 봄을 맞는다.  

아, 봄이 오는 소리여!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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