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방통위원장 ‘폭정에서 민주정 구하기’ 출간
2024-12-30

계절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환절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바뀐다. 그러기에 어느 특정 계절의 끝 무렵에는 그 다음 계절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음 계절의 첫 무렵에는 지난 계절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늦겨울에는 온화한 훈풍이 불어오기고 하고, 초봄에는 한파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절기력에서 각 계절에 속하는 여섯 개의 절기 가운데 앞의 두 번째 및 세 번째 절기를 아예 ‘교절기(交節氣)’라고 부르기도 한다. 봄의 절기로 치면 입춘 다음에 오는 우수와 경칩이 봄의 교절기에 속한다. 입춘은 봄의 교절기적 속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실제 봄의 교절기는 입춘, 우수, 경칩의 세 절기라 할 수 있다.
그레고리력으로 입춘은 2월 4·5일~17·18일이고, 우수는 2월 18·19일, 3월 4·5일이고, 경칩은 3월 5·6일, 19·20일이다. 입춘이 시작되는 2월 초순 어간부터 경칩이 끝나는 3월 중순까지는 겨울과 봄이 교차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무렵에는 봄의 교절기적 속성이 자주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갑작스럽게 닥치는 매서운 봄추위다. 그런데 “추위는 춘분까지”라는 속담도 있듯, 사실 춘분(3월 20·21일-4월 3·4일) 어간까지도 봄추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봄추위의 매서움은 “봄추위에 장독대가 깨진다”는 속담으로 잘 표현된다.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거나 “봄바람은 첩의 죽은 귀신”이라는 속담도 봄바람이 매우 쌀쌀함을 일컫는 말로 봄추위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온다고 말한다. 물론, 세상에는 그런 곳도 있다. 지중해 연안의 지역들처럼,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을 가진 곳은 봄이 되면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보인다. 그러나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는 한반도에서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은 맞지만, 봄이 반드시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점진적으로는 기온이 상승해가기에 따뜻한 봄이 온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일시적으로는 물러가던 겨울이 다시 오는 듯한 싸늘한 날씨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봄의 진격에 겨울은 퇴각하기 시작하지만 곱게 물러가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반격을 노린다.
봄의 전선에 조금만 허점이 보여도 겨울은 무섭게 치고 들어온다. 그런 겨울의 반격으로 봄이 되었음에도 겨울처럼 매서운 추위가 엄습하기도 한다. 봄이 정말 따뜻하고 안정된 날씨를 갖기까지는 이런 봄추위를 몇 번이나 겪어야 한다. 이것이 한반도의 변덕스런 봄 날씨의 특징이다.
초봄이 되면 마치 봄을 맞이하기라도 하려는 듯 아름답고 화사한 이른 봄꽃들이 피어나고 여린 새잎들이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추위가 닥치면 피어난 꽃들이나 잎들이 얼어서 시들거나 피어나려든 꽃이나 잎의 봉오리들이 움츠려든다. 갑작스런 봄추위는 꽃들이나 잎들이 피어나는 것을 훼방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봄에 닥치는 갑작스런 추위는 꽃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뜻으로 ‘꽃샘추위’ 또는 잎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뜻으로 ‘잎샘추위’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런 봄추위는 꽃이나 잎의 개화만을 시샘하는 것이 아니다. 봄이 되었다고 무겁고 우중충한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가볍고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은 멋쟁이들의 멋 단장도 방해하거나 난처하게 만든다. 봄추위는 이래저래 봄맞이를 시샘하는 얄미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봄추위 또는 ‘꽃샘추위’는 대체로 찬바람으로 온다. “옷깃을 여미며 지나가는/찬바람/가슴에 스미니/봄이 무색하구나”[김덕성, 〈꽃샘〉 중에서]. 그래서 봄의 찬바람도 ‘꽃샘바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봄추위 탓에 봄은 결코 평탄하게 오지 못한다. 봄의 시점을 가르는 천문현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지만, 기후현상은 여러 요인들이 작동하여 일정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때로 매우 변덕스럽게 바뀌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에서 봄에로의 이행은 추운 기후가 정반대의 속성인 따뜻한 기후로 바뀌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그래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은 이 경우에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거나 그런 일이 많이 생기는 법이다. 봄추위는 봄이 곱게 오는 것을 방해하는 훼방꾼인 것이다. 몇 번의 봄추위 끝에 4월 말이 되어서야 날씨가 안정되고 드디어 정말 따뜻한 봄 날씨가 찾아오는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따듯한 봄은 봄추위라는 몇 번의 매서운 추위 끝에 온다. 이는 봄이 오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좋은 일을 이루는 데에는 어려움이나 방해도 많다는 호사다마의 진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는 좋은 것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또는 시련을 겪어야 더 좋은 결과를 얻거나 더 성숙할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다.
“봄이면 매번 겪는 꽃샘추위/시련을 이겨낸 삶이 더 아름답듯/봄도 이 고비를 넘어서면/더 아름다운 꽃가마 타고 다가오겠지”[전희종, 〈꽃샘추위〉 중에서]. 즉, 좋은 것을 얻으려면 시련이든 인내든 노력이든 보상이든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봄추위에 의해서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도 일깨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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