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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54> 소야곡의 정한

한양경제 2025-05-22 10:34:15
‘세레나데’(Serenade)는 '저녁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어둠이 내려앉는 고적한 밤, 사랑하는 여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는 노래로 그 한자어가 ‘소야곡’(小夜曲)이다. 우리 대중가요가 태동하면서 소야곡을 제목에 붙인 숱한 노래들이 나왔으나 남인수의 소야곡이 가장 유명하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애수의 소야곡’은 가수 남인수의 출세작이자 대표곡이다. 마지막 길을 위로한 장송곡이기도 했다. 1937년에 발표한 이 트로트곡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이르는 숱한 히트곡의 요람인 ‘박시춘-남인수 콤비’의 첫 성공작이었다. 음반을 낸 오케레코드사도 이 노래를 계기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조차 드러낼 수 없었던 시대, 사랑을 잃고 아파하던 청춘남녀의 대변가이기도 했다.

‘애수의 소야곡’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탄식한다. 가버린 임을 애타게 그리는 체념적 우수가 짙게 깔려있다. 서정적인 가사와 애절한 가락이 임의 부재(不在)를 노래한 전래의 가사문학이나 민요의 보편적인 정서를 계승해서인지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애수의 소야곡’이 흘리는 눈물은 고독한 속울음에 가깝다. 우리 민족 고유의 승화된 이별의 정한을 대중가요가 품은 것이다. 

노랫말 중의 ‘휘파람 소리’ ‘구슬픈 이밤’ ‘못생긴 미련’ ‘애타는 숨결’ 등은 별리(別離)의 정조를 함축한 우리말 고유의 시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 얼마나 숱한 사람들이 한 잔의 술에 애수의 소야곡을 담고 저마다의 사연들을 달랬을까. 무상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듯한 그 애잔한 선율은 여전히 외로운 사람들의 가슴을 달래주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사위지 않는 명곡의 생명력이다.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노래 부른다’ 남인수의 노래에는 소야곡이 많다. 이 노래는 남인수의 3대 소야곡 중에서 ‘추억의 소야곡’이다. ‘추억의 소야곡’이 특히 남인수의 감성을 잘 드러내며 각별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그만한 사연이 또 있었다. 

남인수가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불러도 대답 없는, 떠나간 옛 연인과 흘러간 옛 사랑의 대상은 바로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이었다. 두 사람은 1934년 목포가요제에서 처음 만나 연정을 품은 사이가 되었다. 남인수는 16세이고 이난영이 18세이던 꽃다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1936년 이난영이 공연단장이던 김해송과 결혼하면서 사랑은 멀어져갔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1950년대 중반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폐병으로 요양 중이던 남인수에게 작곡가 백영호가 악보를 들고 찾아왔다. 남인수는 건강상의 이유로 녹음을 거절했지만, 결국은 피를 토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백영호의 거듭된 권고도 있었지만, 가사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첫사랑의 '그 얼굴'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사가 한산도 또한 애초에 남인수와 이난영을 주인공으로 삼아 노랫말을 엮었다고 한다. 

‘추억의 소야곡’은 애절한 가사와 감성적 선율이 옛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배가한다. 남인수 또한 이난영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 196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은 삶을 함께하게 되었다. 남인수는 ‘소야곡’을 부르며 가수가 되었고 ‘소야곡’을 들으며 4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추억의 소야곡'은 전란의 후유증으로 이별을 마주한 숱한 연인들의 가슴을 적시며 대중의 오랜 애창곡으로 남았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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