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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T 가전제품 진짜 승부처는 '보안’

AI 가전은 해킹의 새로운 창구
삼성, ‘녹스’로 정면 돌파… 가전에 보안 내장
글로벌 보안 전쟁… 플랫폼 생태계의 격돌
양자암호 시대 준비… 보안은 ‘기능’이 아닌 ‘조건’
하재인 기자 2025-03-31 10:53:04

“집안 모든 가전이 연결되고 말도 잘 알아듣는데, 혹시 도청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AI 기술이 가전제품으로 확대되면서 ‘홈 인공지능’이 현실이 되고 있다. 냉장고·세탁기·청소기 등 가전이 알아서 작동하고 사용자 행동을 학습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 편리함의 그림자엔 해킹·정보 유출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IoT 가전제품 경쟁에서 ‘보안’이 진짜 승부처로 부상한 이유다.

글로벌 인증기관 UL 솔루션즈에서 최고 보안등급인 ‘다이아몬드’ 등급을 받은 삼성전자 제품. 삼성전자

AI 가전은 해킹의 새로운 창구

전통적으로 가전제품은 보안 논의의 중심에 놓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AI 기술이 탑재되고 스마트홈 플랫폼과 연결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몇 년 전 어린이 방에 설치된 IP카메라가 해킹돼,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너 지금 뭐 하고 있니?”라고 묻는 일이 발생했다. 중국산 로봇청소기를 통해 수집된 실내 영상이 해외 서버로 유출된 정황도 있었다. 가전제품은 이제 해커들에게 또 다른 ‘열려 있는 문’이 되고 있다.

AI 가전은 특히 사용자 패턴, 음성, 위치, 생체 정보까지 다루는 만큼 단순한 해킹을 넘어 실생활 전체가 감시될 수 있다는 불안을 유발한다.

삼성전자가 28일 진행된 ‘웰컴 투 비스포크 AI’ 제품 체험 행사에서 AI 가전 신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였다. 삼성전자

삼성, ‘녹스’로 정면 돌파… 가전에 보안 내장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8일 공개한 ‘비스포크 AI’ 신제품을 통해 이 같은 우려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핵심은 자사 보안 플랫폼 ‘녹스(Knox)’의 전면 확대다. ‘녹스 매트릭스(Knox Matrix)’는 냉장고·세탁기·청소기 등 연결된 가전들이 서로의 보안 상태를 점검하고 위협을 감지하는 기능이다. 여기에 민감한 인증정보를 기기 내 보안칩에 저장하는 ‘녹스 볼트(Knox Vault)’도 가전 최초로 도입됐다.

삼성전자는 “녹스는 스마트폰에만 적용된 보안 체계가 아니다. 앞으로는 모든 가전에 녹스를 내장해 외부 침입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가족 구성원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보이스ID’와 로봇청소기를 활용한 원격 모니터링 기능 등은 모두 개인정보와 연결돼 있어 강력한 보안이 필수적이다.

왼쪽부터 구글홈 홈페이지 캡처, 애플 홈앱 이미지. 구글·애플

글로벌 보안 전쟁… 플랫폼 생태계의 격돌

삼성의 보안 전략은 단순히 기술적 대응을 넘어 플랫폼 경쟁의 일환이다. 애플은 ‘홈킷(HomeKit)’을 통해 폐쇄적이지만 강력한 보안 체계를 구축했고, 구글은 ‘구글 홈(Google Home)’을 기반으로 음성·위치 정보를 통합 관리한다. 중국 샤오미 역시 자사 ‘Mi홈’ 생태계를 통해 단일화된 장치 제어 체계를 만들고 있다.

이들 모두 자사 플랫폼을 중심으로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지만, 보안은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다. 최근에는 스마트홈 연결 표준인 ‘매터(Matter)’와 ‘직비(Zigbee)’, ‘스레드(Thread)’ 등이 부상하면서, 프로토콜 보안 표준 전쟁도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는 “AI 가전의 승부는 결국 소비자가 어떤 플랫폼을 믿고 연결할지를 결정하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DA사업부 정해련별 프로가 2025년형 비스포크 AI에 적용된 양자 내성 암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양경제 하재인 기자

양자암호 시대 준비… 보안은 ‘기능’이 아닌 ‘조건’

삼성전자가 강조한 또 하나의 축은 양자보안이다. 현재의 보안 기술은 양자컴퓨터의 연산 능력 앞에서는 무력화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앞으로 출시될 가전 제품에 ‘양자 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기술을 순차 적용할 계획이다.

양자보안은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지만, 전문가들은 향후 수년 내 IoT 디바이스의 필수 스펙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관계자는 “가전 제품도 은밀한 정보의 허브가 되고 있는 만큼, 양자보안 기술의 선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화면 크기, 에너지 효율, 가격이 가전 선택의 주요 기준이었다. 그러나 AI가전 시대의 소비자는 보이지 않는 ‘보안력’까지 본다. 삼성전자는 자사 AI 가전에 스크린을 탑재하고, 이를 통해 다른 기기를 제어하는 ‘AI 홈’ 개념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는 곧 모든 기기가 하나의 보안망 안에 묶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자는 이제 편리함보다 “이 제품을 믿을 수 있느냐”를 먼저 묻는다.

보안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다. AI 가전의 기능이 고도화될수록, 보안 위협도 정교해진다. ‘방어 설계 없는 혁신’은 시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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