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글로벌 배터리·철강·에너지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에서 벌어지는 산림 파괴, 노동착취, 환경오염 문제와 깊게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태호·김태선·박지혜·이용우 의원 공동 주최로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기업 책임 강화를 위한 아시아 연대와 대응 국제포럼'이 열렸다. 이날 모인 국제 ESG 전문가들은 “한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인권·환경 책임을 이끌 선도국이 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 “LX인터내셔널, 인수 후에도 사망사고·파업…공급망 관리 실패”
김혜린 기후해양정책연구소 코리 실장은 “한국 배터리 산업은 기술력만큼이나 공급망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중요하다”며 특히 LX인터내셔널의 인도네시아 광산 운영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LX인터내셔널이 PT ATN 광산을 인수한 이후에도 노동자 사망 사고와 노조 파업이 잇따랐다”며 “이는 단순한 현지 리스크가 아니라 한국 기업의 구조적 책임 회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실장은 “환경오염, 불법 벌목,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동안 한국 본사는 명확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공급망 인권실사 의무화를 통해 해외 자회사 관리 책임을 법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 기업, 인도네시아 니켈 공급망의 한 축”
피우스 긴팅(Pius Ginting) 인도네시아 Aksi Ekologi & Emansipasi Rakyat 소속 환경운동가는 “인도네시아 동부 지역의 니켈 채굴 현장에서 산림 파괴와 원주민 이주, 노동자 사망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 과정에 한국, 일본, 중국 기업이 모두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파나소닉 등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인도네시아 주요 광산과 제련소의 하방 공급망에 포함돼 있다”며 “이들은 인권침해로 얻은 원재료로 고부가가치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긴팅은 “한국 기업이 ‘친환경’과 ‘탄소중립’을 내세우는 한편, 현지에서는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도덕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 자본, 심해 채굴까지 진출…‘그린워싱’ 위험”
시게루 다나카(Shigeru Tanaka) 일본 태평양아시아자원센터 소속 환경운동가는 “한국과 일본 자본이 인도네시아·필리핀 니켈 채굴뿐 아니라 심해 채굴까지 확장하고 있다”며 “이는 유엔 해양법(UNCLOS)을 위반하는 위험한 시도”라고 경고했다.
그는 “니켈 채굴지 인근 강이 발암물질로 붉게 변하고, 주민들이 피부염과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이 광석은 테슬라, 도요타, 파나소닉뿐 아니라 한국의 배터리 공급망으로도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나카는 “이런 상황에서 ‘책임 채굴’은 유니콘처럼 존재하지 않는 말에 불과하다”며 “한국 기업들이 진정한 의미의 ‘책임 있는 광물 조달’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쉬안 쑨 “한국이 먼저 인권 실사법 제정 후 아시아 변화 이끌어야”
신쉬안 쑨(Hsin Hsuan Sun) 대만환경권리재단 활동가는 “한국, 일본, 대만은 모두 인도네시아 니켈 산업의 수혜자”라며 “한국이 먼저 인권실사법을 통과시켜야 아시아 전체의 책임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화신그룹이 인도네시아에 건설한 화력발전소는 학교에서 500m도 떨어지지 않아 아동 건강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며 “이 구조는 한국 기업의 공급망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배터리와 철강기업들은 저임금 노동과 환경 파괴 위에 세워진 ‘값싼 니켈’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제 한국이 인권실사법 제정을 통해 책임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박지혜 의원 “한국형 인권실사법,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늘날 전 세계는 공급망으로 연결돼 있으며, 그 이면에는 저임금 노동과 아동 노동, 환경 파괴가 자리하고 있다”며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기업 인권실사법 같은 구속력 있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도 이미 인권실사법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국회와 시민사회가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적 책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기업들이 해외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이 아시아에서 인권과 환경 책임의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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