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붓으로 그린 세상] 외나무다리 건너면 400년 역사 ‘생생’
2025-04-28
현행 상법에 따르면 이사는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를 부담하고 있다(상법 제382조의 3)고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고, 이사가 직무수행에 있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개정안 제382조의 3 제①, ②항 신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입법화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사가 주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정안이 대두된 이유는 대륙법계 (유럽 대륙의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형성, 발전해 아프로유라시아 및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널리 채택되고 있는 법계를 가리킨다)인 우리나라는 1962년 상법 제정때부터 제382조 제2항에서 “회사와 이사의 관계는 ‘민법’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이사가 회사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민법 제681조)를 부담한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1998년 일부 상법을 개정하면서 이사의 책임 강화를 위해“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제382조의 3을 신설하였다. 영미법계(독일·프랑스 등의 대륙법계에 대비해서 영국과 그 연방 제국 및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계(法系)다. 성문법주의의 대륙법에 반해 영미법은 판례법주의를 특색으로 한다)의 충실의무를 도입한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무엇인지, 기존에 규정하고 있었던 위임관계에 기한 선관의무와 새로 도입한 충실의무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충실의무는 선관의무를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와 이사가 기관으로서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는 선관주의 의무이고, 개인의 자격에서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켜야 할 의무는 충실의무라고 구분하는 견해가 갈리었다.
그후 2011년 일부 개정때 이사가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 또는 회사가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기회를 제3자에게 이용하도록 하는 경우에도 이사회에서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승인을 받도록 하고(상법 제397조의 2), 이사와 회사 간 자기거래의 요건을 이사뿐만 아니라 이사의 배우자 등까지로 확대하고(상법 제398조), 거래의 내용이 공정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추가했다.
ESG 경영과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등으로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것)’도입의 바람이 불자,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발행하는 바람에 소수 주주들이 손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는 회사에만 책임을 진다는 상법 규정 때문에 이사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시민단체와 일부 학자, 그리고 정치인들 사이에 상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을 명문화하면, 이사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게 되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이 강화되며, 이사의 행위가 주주의 이익과 일치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단기적인 사익 추구보다 장기적인 기업가치 증대에 더 우선순위를 두게 되고, 기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며,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추세이므로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배경하에, 이사가 주주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게 하자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달 13일 국회의 의결을 거쳤으나, 정부는 재의를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반대 의견을 명시했다.
첫째, 문언의 불명확성 때문에 주주 이익의 보호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기업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 주주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권한이 없는 이사가 이해관계가 상이한 여러 주주에게 부담하는 의무가 서로 충돌하는 ‘의무의 충돌’ 상황에 빠져 오히려 이사회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개정안의 불확실성과 상징성은 자본력을 가진 투기적 세력이 단기이익을 목적으로 국내 기업을 공격할 때 ‘비대칭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
둘째, 대륙법계를 따르는 우리 상법은 이사와 회사 간의 법률관계를 위임계약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이사가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는 주주에게 책임을 부담하도록 되어 있어, 상법 체계에 맞지 않으며, 미국에서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한 성문법은 드물다.
셋째, 개정안은 이사가 부담해야 하는 의무의 내용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견해는 이에 더해, 전체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은 사실상 차이가 없고,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기존의 상법상의 회사에 대한 책임(제399조), 제3자에 대한 책임(상법 제401조) 등이 존재하며, 상법 외에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등에서 소수주주의 보호나 지배주주의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규제를 두고 있다.
만약 회사와 주주간 이익이 충돌하는 안건이 발생하는 경우 의사결정이 곤란해지며, 미국, 영국 등 주요국의 회사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되고,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이라고 하더라도, 회사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일반론적 문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주주의 이익이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주주와 회사의 이해가 엇갈리는 경우는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해야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대주주와 소수 주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대주주 사이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같은 소수 주주라고 하더라도, 상속을 염두에 둔 주주와 당장 배당을 받아 생활비로 사용해야 하는 주주는 배당정책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 있다.
이사가 직접 관련도 없는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나? 어떤 주주의 이익을 존중해야 하나? 과감한 경영 판단이 어렵고, 의사결정이 지체되기 쉽다. 이사들 사이에 복지부동이 유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는 이사회를 할 때마다 여러 주주들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게 되고, 이러한 리스크에 대한 보상과 강화된 임원배상책임보험을 요구하게 된다. 자본가의 리스크를 이사의 리스크로 떠넘기는 것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 주주평등의 원칙’이라는 주식회사 제도의 대전제를 왜곡시킬 수 있다.
소수 주주는 회계장부 열람 청구권(상법 제466조 제1항),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상법 제366조 제1항) 등 여러 상법상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도 있다. 잘못을 저지른 이사가 있다면, 판례로 확립된 ‘경영판단의 원칙’ 위반이나, 형사상 배임죄 등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대기업이 문제라면, 상거래에 관한 일반법이라고 할 수 있는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을 개정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그 책임자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부터 만들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모색하고, 여러 대안들 중에 어느 것이 최적인지를 비교 검토하여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결과 입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필요한 입법조치를 해야 한다. 법을 만들더라도,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비례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주주의 입장, 기업의 입장, 이사의 입장, 소비자의 입장, 여러 입장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무조건 센 법, 한쪽 단면만 바라보는 법은 기업의 자율을 해치고, 나아가 기업과 자본을 해외로 축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박민재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변호사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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