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의 자연에세이] <23> 늦겨울, 봄에로의 이행기
2025-02-03

식목의 적기는 언제일까?
날씨가 따뜻해져 동해(凍害)가 없고, 뿌리의 활착이 잘 되고, 잎이 너무 자라지 않은 때여야 한다. 3월 하순에 시작하는 춘분(3월20~21일~4월 3~4일)에는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겨울에 얼었던 땅이 완전히 풀리고 땅속 온도도 오르게 된다. 그래서 춘분 무렵부터 식물들의 소생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춘분까지는 흔히 꽃샘추위로 불리는 영하의 상당한 한파가 자주 몰려와 식물이 동해를 입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게다가, 식물학자들에 따르면, 나무의 뿌리가 활착되고 생장을 하기 위해서 땅속 온도가 섭씨 6도 이상은 돼야 하는데 전국이 이 기준이 되려면 4월 초순은 돼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나뭇잎이 아직 어릴 때까지가 식목의 적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절기력으로 치면 대체로 청명(4월 4~5일, 19~21일) 어간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옛날부터 날이 풀리고 날씨가 안정돼 온화해지는 청명을 나무 심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로 여겼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청명에는 부지깽이도 땅에 꽂으면 잎이 돋는다”는 속담이다.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청명에 식목을 장려했다.
이를 위해 “청명 한식 나무 심자”로 시작되는 〈나무 타령〉이라는 매우 익살스런 민요를 만들어 보급했다. 〈나무 타령〉은 끝 구절이 “아무데나 아무 나무”로 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이 또한 청명에는 아무데나 아무 나무를 심어도 잘 자란다는 뜻이다. 이처럼 청명은 식목의 적기임을 인지하고 그에 따라 나무 심기를 장려한 것은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의 발현이었다.
이러한 선조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1946년 우리의 식목일을 정할 때 청명이 시작되는 첫 날 즉 청명일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청명일은 4월 5일에 드는 경우가 많아 식목일은 4월 5일로 고정됐다. 우리의 식목일은 조상의 지혜를 이어가면서 청명일이라는 의미 있는 날을 택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식목에 가장 적정한 시기를 택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 선조들의 익살과 나무 이름을 익히기 위해 〈나무 타령〉을 살펴보자. “청명 한식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 골에 상나무, 너 하구 나 하구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 나무.”
이처럼 〈나무 타령〉은 여러 나무의 이름들을 매우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이 〈나무 타령〉의 마지막 구절의 ‘내 나무’는 나무의 이름이 아니라 ‘나의 나무’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부모가 청명(청명 이후에 태어난 경우에는 그 이듬해 청명) 절기에 그 기념으로 그 아이를 위해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심은 나무가 그 아이 본인에게는 ‘내 나무’인 것이다.
‘내 나무’로 딸을 낳으면 집안의 뜰이나 밭두렁에 빨리 자라고 재질이 단단한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곧게 자라는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어 그 딸이나 아들로 하여금 그 나무를 자기 것으로 여겨 정성껏 돌보게 했다. 딸의 내 나무는 그 주인이 성장해 시집갈 때 혼수용으로 장롱을 비롯한 가구를 만들어 주고, 아들의 내 나무는 그 주인이 이승을 하직할 때 그의 관을 짜는데 썼다고 한다.
내 나무의 주인은 자신의 나무 앞에서 “한식날 심은 내 나무/금강수(金剛水) 물을 주어/육판서(六判書)로 뻗은 가지/각 읍 수령(守令) 꽃이 피고/삼정승(三政丞) 열매 맺어”라는 〈내 나무 노래〉를 부르고 애지중지하며 잘 가꾸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총각은 좋아하는 처녀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거나 정성들여 잘 가꾸는 것으로 연정을 표시하기도 했다고 하니 내 나무는 사랑의 매개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의미 있고 멋진 ‘내 나무’ 풍속이 사라진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나무는 목재의 원료로서 중요한 경제적 자원일 뿐만 아니라 열매와 잎으로 먹거리를 제공한다. 나무는 홍수를 방지하고 땅을 비옥하게 하며, 나뭇잎은 광합성을 통해 일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해 환경을 정화한다. 나아가 나무는 그 존재 자체로 환경을 미화해 우리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식목을 장려했고, 1960년대 초부터는 본격적인 ‘산림녹화운동’을 벌이면서 난방을 장작이 아니라 석탄과 석유로 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옛적부터 나무의 중요성을 알고 〈나무 타령〉까지 만들어 식목을 장려해왔으며 식목의 적기도 잘 알고 있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 덕에 일제의 목재 착취, 6·25에 의한 산림 파괴, 무엇보다 장작에 의한 난방으로 민둥산 천지였던 한국은 이제 어디를 가나 산은 울창한 숲이 되어 있고, 공원이나 도로변은 많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유엔은 우리나라를 “2차 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공식 인정했다.
이제 전국이 녹화돼 있는 우리에게 식목은 단순히 아무 나무나 더 많이 심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는 온난화 등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하면서도 경제성이 있고 주위 환경과 잘 어울리는 고급 수종들을 잘 선택해 심는 주도면밀한 계획적 조림 정책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미 그런 방향으로 식목과 조림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들도 적지 않다.
지자체장들을 비롯해 산, 공원, 가로의 식목과 조림에 책임이 있는 분들은 식목과 조림에 대한 더 높은 안목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