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적의 비만약이라 불린 위고비의 인기가 주춤해지자 국내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제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배고픔 조절 리모컨 역할을 해주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기반 약물인 위고비가 비만 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살이 빠지면서 근육 손실이 동반되는 등의 부작용이 심나타나면서 점차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위고비의 유행 이후로 국내외 제약사를 중심으로 체 감량 효과는 더 크고, 부작용은 더 적은 약품을 내놓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 점점 커지는 비만 치료제 시장
이제 비만은 단순한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암, 심혈관 질환, 당뇨병 등 200여 질병을 유발하는 비만은 이른바 ‘관문 질환(gateway disease)’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건 인류 건강 증진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비만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인구는 2020년 9억8800만여에서 2035년 19억1400만명까지 늘 것으로 예상된다.
비만 인구 증가에 따른 비만 합병증과 관련된 의료 비용과 노동력 손실 등 사회적 비용도 2020년 1조9600억달러에서 2035년 4조3200억달러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비만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 더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약계는 끊임없는 실험으로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만 치료제 개발로 앞으로 수명 연장과 건강 증진, 삶의 질 개선 등 전 세계인의 건강에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만 치료제의 비싼 가격 문제도 서서히 해소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현재는 고가의 약값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비만 환자들은 비만 치료제의 혜택을 보기 어려운 상황인데, 가격이 내려가면 보다 광범위한 건강 증진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비만 치료제는 체중 감량 효과 외에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로도 주목받고 있다. 비만 치료제의 본래 기능인 ‘배고픔을 억누르는 효과’를 넘어 ‘다른 욕망을 억제하는 효과’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비만 치료제는 쾌감·즐거움과 관련한 도파민 분비를 제어해 식욕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부 제약회사들은 비만 치료제로 알코올이나 담배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 마약에 대한 갈망까지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며 비만 치료제는 단순히 체중 감량을 도와주는 약물이 아니라 ‘21세기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국내외 제약업계가 개발 중인 비만 신약후보물질은 2023년 121개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0개 늘었다. 그중 임상3상에 진입한 신약후보물질은 49개, 임상2상은 50개, 임상1상은 22개로 집계됐다.

■ 비만 시장서 속도 내는 국내 바이오기업 한미약품, 일동제약 잰걸음
국내에서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중에서는 한미약품, 일동제약, 디앤디파마텍, 뉴로보 파마슈티컬스, 디엑스브이엑스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제약사 중 한미약품과 일동제약,HK이노엔은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당뇨병학회(ADA 2025)’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신약은 체지방은 많이 줄어들게 하면서도 근육량은 유지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한미약품은 기존의 GLP-1을 비롯한 인크레틴 수용체가 아닌 CRF2(corticotropin-releasing factor 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타깃하는 UCN 2(Urocortin 2) 유사체인 HM17321 개발에 나섰다.
HM17321은 올해 하반기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HM17321은 지방은 선택적으로 감량하면서도 근육량은 증가시키는 ‘퍼스트 인 클래스’ 비만 혁신 신약으로 개발 중이다.
특히 이 신약은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체중 감량’과 ‘근육 증가’를 동시에 실현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작용 기전 기반의 혁신적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다.
HM17321은 한미약품 R&D센터에 내재화된 최첨단 인공지능 및 구조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설계됐으며, 표적 수용체에 대한 선택성과 정밀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지방은 효과적으로 감량하면서 동시에 근육량은 증가시키도록 설계됐다.
HM17321은 펩타이드 기반 물질로 설계돼 투여 편의성이 높고, 비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특히 병용 치료제로 개발될 경우, 기존 인크레틴 계열 약물과 하나의 주사기에 혼합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어 환자들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일동제약그룹도 신약 연구개발 자회사인 유노비아를 통해 비만과 당뇨 등을 겨냥한 대사성 질환 신약 후보물질 ‘ID110521156’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ID110521156은 GLP-1 RA(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로, 체내에서 인슐린의 합성 및 분비, 혈당량 감소, 위장관 운동 조절, 식욕 억제 등에 관여하는 GLP-1 호르몬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유노비아 측은 “ID110521156은 기존의 대표적 치료제인 펩타이드 소재의 주사제에 비해 뛰어난 생산성과 우수한 사용 편의성 등 뚜렷한 차별점을 지니는 저분자 화합물 기반의 경구용(먹는) 합성 신약 후보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유노비아는 ID110521156의 안전성과 내약성, 약동학·약력학적 특성을 평가하는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임상 1상 단회용량상승시험(SAD)을 완료하고 현재 후속 연구인 다중용량상승시험(MAD)을 시행 중이다.
펩트론도 차세대 비만 및 제2형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의 전임상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펩트론은 ADA 2025에서 지속적 식욕 억제 및 혈당 조절 효과를 갖는 PTAP-009와 새롭게 발굴된 PTAP-010의 연구 데이터를 처음 공개했다.
두 후보물질은 전임상 동물모델에서 체중 및 섭취 관련 대사 지표 개선 효과를 나타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누적 식이 섭취량을 14.3% 감소시키며 체중을 7.5% 줄이는 전형적인 '식욕억제형' 패턴을 보였다. PTAP-009 역시 이와 유사하게 식이 섭취량을 20.3% 대폭 감소시켜 9.8%의 체중 감량 효과를 나타냈다. 반면 PTAP-010은 식이 섭취량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체중 감량 효과(9.9%)를 기록했다.
이번 학회에서 PTAP-010은 식이 조절에 초점을 맞춘 비만과 당뇨병 치료제가 아니라, '잘 먹어도 살이 빠지는' 대사 활성 중심의 치료 패러다임 전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 HK이노엔은 중국 기업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도입한 GLP-1 작용제 ‘에크노글루타이드’의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했다.
HK이노엔은 지난 5월 국내 임상3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고, 국내 성인 비만 또는 과체중 환자 384명을 대상으로 에크노글루티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도 본격화했다.
이처럼 바이오·제약 회사들이 비만 신약 개발에 적극 나서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또한 정부와 협력해 △치료제 접근성 개선 △장기 안전성 확보 △보험 급여 △비만 예방·관리 프로그램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들의 신약 후보물질들도 글로벌 시장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있다”며 “신약 개발에 성공해 상업화까지 이뤄진다면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이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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