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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66> 만주 유랑가

‘타향살이’ ‘눈물 젖은 두만강’ ‘대지의 항구’ 등
유랑민들 애환 달래…식민지 시대 대표적 망향가
한양경제 2025-08-20 09:57:45
만주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의 영토였다. 우리 역사의 발자취가 어린 곳이다.

19세기 이후 겨레의 만주 이주 역사는 조선 후기의 ‘학정(虐政)’을 피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하던 1930년대 중반부터 월강(越江)이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만주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정든 고향을 등진 채 만주로 내몰린 망국민들의 여정은 방황과 탄식 그 이상이었다. 

우리 대중가요가 만주 이주민들의 정서를 대변한 것은 1920년대 후반 들어서였다. 주로 유랑민들의 고달픈 심사를 그리면서도 더러는 비분(悲憤)한 저항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 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고복수의 ‘타향살이’는 만주 동포들의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던 식민지 시대 최고의 유행가였다. 망향가의 대명사였다.  

나라 잃은 민중의 서러움을 그토록 흠뻑 머금은 계면조의 성음은 흐르는 곳마다 눈물바다를 이루며 유랑민의 애환을 달랬다. 독립군 아내의 호곡성이 배어있는 ‘눈물 젖은 두만강’도 빼놓을 수 없는 1930년대 만주발 유랑가다. 1940년 무렵에는 만주 이주민이 200만 명에 이르렀다. 만주의 풍경이나 감성을 담은 노래들이 더 많이 생산된 연유다.  

만주를 무대로 한 공연 활동도 왕성했다. ‘노래하자 꽃서울 춤추는 꽃서울, 아카시아 솦속으로 꽃마차는 달려간다, 하늘은 오렌지색 꾸냥의 귀걸이는 한들한들, 손풍금 소리 들려온다 방울소리 울린다’. 꿈과 희망을 안고 국경을 넘어 만주로 온 망국민들의 정한을 가장 잘 대변한 노래가 1939년 진방남이 부른 ‘꽃마차’일 것이다. ‘꽃마차’는 진방남이 북만주 하얼빈의 이국정취를 묘사한 것이다. 작사가 ‘반야월’로서의 첫 데뷔곡이기도 하다. 

광복 후 남북이 갈라지고 만주가 적성 국가 중공(中共)의 영토가 되자 ‘하얼빈’을 ‘꽃서울’로 바꾸는 등 원곡 가사의 일부를 수정했다. 그래도 오렌지색 하늘과 소녀를 뜻하는 중국어 ‘꾸냥’, 손풍금과 마차 등 만주 특유의 정취가 남아있다. 당시에는 일제의 만주 이주정책에 따라 만주 열풍이 불기도 했다. 만주를 새로운 희망과 풍요의 땅으로 상정한 영화 ‘복지만리’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백년설이 부른 영화의 주제가 ‘복지만리’와 ‘대지의 항구’ 또한 만주에 대한 낙관적 환상을 가진 조선인들의 만주 이민에 일조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친일가요라는 굴레를 쓸 수밖에 없었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하지만 ‘대지의 항구’는 그 부정적인 시선을 넘어섰다. 한국적 감성을 담은 노랫말의 서정성과 경쾌한 멜로디로 ‘암울한 시대의 사생아’라는 마뜩잖은 주홍글씨를 상쇄한 것이다. ‘대지의 항구’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만주벌판을 떠돌던 식민지 백성들의 고단한 심사를 위무하는 망향가 역할을 했다. 광복 후에도 전주(前奏) 음악이 방송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 등으로 널리 활용되면서 그 인상적이고 역동적인 리듬이 국민 애창곡으로 자리잡았다.

만주 이주민들의 삶을 반영한 노래는 고향에 대한 가이없는 그리움을 토로하기 마련이다. 그 애절한 향수심을 대변한 최고의 유행가가 1942년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이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머나먼 북간도에서 고향을 그리는 이 망향의 노래가 오랜 세월 한민족의 가슴을 적셨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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