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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67> 강화도의 노래

한양경제 2025-08-27 10:31:42
강화도는 역사의 섬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숨은 비경도 많지만 지닌 사연도 많다. 강화도는 한반도의 배꼽이다.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몽고 침략기에는 고려의 수도였다. 대륙의 침략에 맞선 마지막 보장처였고, 서양 제국주의 침탈에 저항한 최전선이었다. 강화도만큼 역사의 스팩트럼이 넓고 문화유산이 다양한 곳도 드물다. 대중가요는 그중에서도 특히 왕족의 유배지 강화도에 주목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이래 숱한 왕과 왕족이 유배를 와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한 고려 희종이 강화도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려말 창왕은 열 살의 나이로 유배 온 강화에서 죽었다. 조선시대 폐륜의 군주 연산군을 위리안치했던 유배지가 강화 교동도에 남아있다. 인조반정으로 쫒겨난 한많은 폐주(廢主) 광해군도 강화를 거쳐갔다.  

가장 드라마같은 강화 여정(旅程)을 남긴 주인공은 조선 25대 왕 철종이다. 박재란의 ‘강화도령’도 이미자의 ‘임금님의 첫사랑’도 그렇게 철종의 유배지였던 강화도가 낳은 노래다. 왕손 이원범은 집안이 역모에 휘말리는 바람에 강화도에 유배를 와서 나뭇짐을 지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왕이 되어 한양으로 떠났다. 이보다 더 드라마같은 역사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임금이 되어 구중궁궐에서 호의호식하지만 강화 유배 시절에 나눴던 처녀와의 애틋한 사랑을 잊지 못한다. 왕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못내 아파하고,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여인은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된다. 숱한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됐던 철종 임금의 첫사랑 이야기다. 그 첫 작품이 1963년 이서구 극본의 ‘강화도령’이라는 KBS 라디오 드라마였다.  

‘두메산골 갈대밭에 등짐 지던, 강화도련님 강화도련님, 도련님 어쩌다가 이 고생을 하시나요, 음~ 말도 마라 사람 팔자, 두고 봐야 아느니라 두고 봐야 아느니라’. ‘강화도령’ 주제가는 당시 26세였던 박재란이 불렀다. 이후 영화로도 제작돼 잇달아 흥행을 했다. 제목이 ‘임금님의 첫사랑’이었다. 이때부터 ‘임금님의 첫사랑’은 철종과 강화 이야기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사극의 소재로 거듭나며 그때마다 주제가의 내용도 달라졌다. 이미자의 노래도 있고 조미미의 노래도 있다. 당시 강화도를 오가는 버스에는 하루종일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덕분에 강화도를 찾는 관광객도 늘어났다. ‘강화섬 꽃바람이 물결에 실려오면, 머리 위에 구름 이고 맨발로 달려나와, 두 마리 사슴처럼 뛰고 안고 놀았는데, 갑곶진 나루터에 돛단배 떠나던 날, 노을에 타버리는데, 임금님의 첫사랑’. 

1975년 TBC 동양방송의 드라마 ‘임금님의 첫사랑’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재형 PD가 연출하고 신봉승 작가가 극본을 쓴 작품이었다. 철종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강화도에서 만난 처녀와의 애틋한 사랑을 그렸는데 정사(正史)는 아니었다. 야사(野史)에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을 곁들인 것이다. ’철종‘으로 등극한 속칭 ‘ 강화도령’ 이원범이란 인물의 삶에 대한 왜곡과 과장도 적잖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파생된 강화의 아름다운 스토리텔링과 강화 나들길의 정감까지 애써 폄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1966년 조미미가 부른 ‘강화도 처녀’는 그저 평범한 섬 아가씨의 순정이다. ‘구비치는 물결 소리 바람 따라 울고 갈 때, 전등사의 목탁 소리 구슬프게 들려만 오네, 깊은 정만 새겨놓고 야속한 임 어디로 가서, 이렇게도 안온다고 한숨짓는 강화도 처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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