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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프레스센터에서] ‘오복현’과 ‘新관치금융’

‘검사 출신’ 이복현 금감원장의 과도한 시장 개입 논란
‘관치금융’이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4가지 폐해
‘감 놔라, 배 놔라’ 당국에 책임 돌릴 빌미도 걱정해야
이승욱 기자 2024-11-05 11:35:43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금융가에서 나오는 ‘오복현’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가뜩이나 서슬 퍼런 칼날 위를 걸어가는데, 그런 말이 나오니 움츠릴 수밖에요. 보수 정권에서 ‘관치금융’이라니 아이러니하죠.”


두어달 전 만난 한 증권사 관계자가 불쑥 꺼낸 말이다. 금융가에서 회자하는 ‘오복현’을 언급하는 그의 말밑에 뒤숭숭한 심정이 묻어났다. ‘오복현’은 임기 3년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정권 임기와 맞춰 ‘5년’ 동안 원장직을 수행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 원장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검사 출신 이 원장이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 초대 금감원장으로 취임하자 금융권은 바짝 긴장했다. 순수 금융권 출신이 아닌 이 원장의 기용에 대한 설명 뒤에는 ‘기업·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특수통 출신’이라는 이력이 따라다녔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원장이 ‘국회 입성’을 도모할 것이라는 짐작이 금융가에서도 떠돌았다. ‘불편한’ 금감원장이 공복을 조기에 벗고 정치권으로 방향을 틀었으면 하는 금융가의 기대감이 인사 전망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원장직에 ‘스테이(stay)’했고, 목소리는 더 커졌다. 

‘삼복현’이 아닌 ‘오복현’을 목도해야 할 금융가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권력과 접점이 맞는 금감원장이 전체 금융시스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다. 

관치금융 논란은 특정 정치권력이 집권할 때만 나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범죄 잡던 검사 출신이자 권력 실세와 한 라인으로 분류되는 금감원장이라는 상징성 탓에 신(新)관치금융에 대한 우려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한다. 

관치금융은 비단 현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우려하는 관치금융은 금융을 정치 행위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정치권력, 그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금융당국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편승해 민간 금융기업의 경영과 인사 등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숱하게 있어 왔다. 하지만 마치 ‘칼을 든 정의로운 무사’처럼 연발되는 금융당국 수장의 언행은 우려할 만하다. 

관치금융을 넘어 ‘검(檢)치금융’이라는 마냥 웃고 넘기기 힘든 소리가 나올 정도라면 시장과 금융 부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봐야 한다. 이미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과도한 언행들이 드문드문 돌출되며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첫째, ‘정치적 오해’를 야기하고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해결 방식을 흐트려 합리적 시장 흐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에 대한 손실보상과 관련한 과도한 개입이 대표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손실 피해를 주장하는 40만 계좌에 육박하는 ELS 계좌 소유자들에게 최대 100%까지 배상토록 ‘권고’하는 분쟁조정안을 은행·증권사에 들이밀었다. 

금감원의 공식적인 언급은 ‘권고’이나, 배상 이행 규모를 살펴본 뒤 과징금과 임직원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는 전제를 단 만큼 수사(修辭)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았다. 업계에서는 “금감원 압박에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마저 잃었다”, “비바람은 우선 피하고 볼 일”이라는 둥 볼멘소리가 나왔다. 

관리감독 기관으로서 금감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불완전 판매나 잘못된 상품으로 인해 금융 피해를 보면 민사소송 등을 통해 법적인 판단에 우선 맡기는 것이 통상적이다. ELS 투자자들 중 이미 상품거래를 통해 이익을 본 투자자들이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둘째,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금융당국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예측 불가능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미국발(發) 금리 인하에 맞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시중 대출금리는 오르고 예금이자는 낮아지는 등 괴리현상이 논란을 빚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대출 규제 강화를 압박하면서 빚어진 시장 혼돈이다. 금감원은 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지 말라고 주문했고 그 직후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정감사장에 선 이 원장은 “(대출 규제에 대한) 개입 방식을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때 가계대출 추세를 안 꺾었으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도 어려웠을 것이고 국내 경제 상황이 더 힘들어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의 해명을 두고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과도한 대출 규제 압박에 정치적인 고려가 없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전임 정권 당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비판했던 현 정부·여당으로서는 금융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충동에 빠지지 않았을까. 

셋째, 일관성 없는 ‘공공의 적 만들기’를 통해 금융시스템의 불신이 심화하는 것도 폐해로 지적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은행 공공재’라는 발언을 통해 시장을 술렁이게 했다. 이내 금융당국은 대출자 부담을 고려한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금융사들이 과도한 ‘이자 장사’를 통해 이익을 구가한다는 점은 어제오늘의 논란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당국이 마치 도매금으로 업계를 공개 심판대에 세우는 순간, 금융시장 신뢰의 한축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더욱이 불과 1년여 만에 금융당국 압박에 대출 금리를 경쟁하듯 올려야 하는 상황은 또 다른 ‘촌극’이다. 

넷째, 금융당국의 과도한 개입은 금융업계의 ‘책임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관치금융은 비단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만 비판 대상은 아니다.

관치금융으로 인해 금융업계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경영책임에서 자유로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 야기할 수 있는 치명적인 리스크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업계가 ‘은근히’ 관치금융을 선호하는 경향을 낳기 때문이다. 

한 금융사 임원은 “금감원이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하면 업계 입장에서는 당장 불편하니 투덜대기는 할 것”이라면서도 “(금감원의) 지시 사항만 잘 이행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데 굳이 불평할 게 없다는 인식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는 금융사 연구를 토대로 ‘금융의 지배(The Ascent of Money)’를 썼다. 이 책에서 퍼거슨 교수는 정부(규제자)와 금융 시스템의 근본적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규제자들이 내세우는 취지는 대개 금융 서비스 분야의 안정성 유지”라면서 “주요 금융기관이 붕괴하면 소매금융 고객(retail Customers)이 예금을 잃게 되므로 그 어떤 규제자(그리고 정치인)도 이를 필사적으로 막아 내려 한다”고 설명했다. 

퍼거슨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2007년 8월 국가가 개입한 사례를 들며 “(당국이) 유동성 문제나 지불 불능 사태를 막아 준다는 인식이 퍼지자, 금융기관이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지적했다. 

금융데스크 
금감원의 설립 목적은 건전한 신용 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감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를 수행한다. 

당연히 불건전하고 불공정한 금융업계 불법적 행태에는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금감원도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함’을 지향하며, 종국적으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금융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오복현’이 현실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교체설도 나온다. 다만 금융가를 향해 ‘칼’을 들어본 검사 출신을 금융당국 수장에 기용한 ‘실험정신’이 소박한 성과라도 내려면, 관치금융의 색(色)을 조금이라도 빼려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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