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보험 성장 둔화와 손해율 변동성 확대로 수익성 관리가 까다로워지자 손해보험업계의 시선이 신상품 독점권, 이른바 배타적 사용권으로 쏠리고 있다. 3분기 말 기준 손해보험사의 배타적 사용권 신청은 31건으로 전년 동기 13건 대비 138% 급증했다. 이미 2023년 19건, 2024년 26건을 넘어섰고, 현 추세라면 2022년의 최대치 36건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상품 가짓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생활 불편과 사회적 위험을 세분화해 보장의 빈틈을 메우는 방향으로 경쟁이 이동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치매 관련 담보는 돌봄 비용의 실질적 지출을 겨냥해 진화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치매 중증도를 평가하는 CDR 척도검사 비용을 보장하는 담보로 배타적 사용권을 확보했다. 흥국화재는 치매 환자 실종 사고 발생 시 보호자에게 생기는 경제적 피해를 보장하는 특약으로 6개월의 독점권을 인정받았다. 기존의 일시금 중심 진단·간병 보장에서 벗어나, 진단 이전의 평가와 사고 이후의 대응까지 연결하며 가족 부담을 낮추는 흐름이다. 고령화와 경증 치매의 조기 진단 수요가 늘어나는 환경을 감안하면, 이러한 생활형 케어 담보는 손해율 관리와 고객 체감 효용을 동시에 잡을 가능성이 있다.
펫보험 시장에서는 사고 이후의 행동 변화까지 보장 범위를 넓히는 시도가 본격화됐다. DB손해보험은 반려견 물림 사고 발생 시 견주의 법률상 배상책임이 성립하는 경우 행동교정 훈련비를 실손 보장하는 담보로 9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얻었다. 보호자 입원 시 반려동물 위탁비용 보장, 개물림사고 벌금 보장 등과 함께 한 해 동안 연속적으로 새 담보를 내놓으며 포트폴리오를 촘촘히 했다. 치료비 중심에서 재발 방지와 돌봄 관리까지 확장한 점은 사회적 비용 절감이라는 공익과 보험의 위험관리 기능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펫보험의 만성적 손해율 문제를 개선하려면 인수·요율 정교화와 함께 이러한 사후관리형 담보의 실사용 데이터가 빠르게 축적될 필요가 있다.
생활밀착형 보장의 대표 주자는 지하철 지연 보상이다. 삼성화재는 수도권 지하철이 30분 이상 지연될 때 택시·버스 등 대체교통비를 월 1회, 최대 3만원 보장하는 상품으로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다. 승하차 기록, 지연 정보, 대체교통 영수증을 데이터로 연결해 자동 청구와 자동 보상을 구현한 점이 혁신성으로 인정됐다. 잦은 지연 경험과 소액이지만 반복되는 추가 비용을 즉시 보전한다는 점에서 MZ세대와 직장인 수요가 크다. 디지털 전환 비용이 부담인 보험사 입장에서는 프로세스 혁신이 콜센터·심사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생명보험권도 미충족 수요를 정조준한다. 환율 변동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정환율에 따라 연금 지급 통화를 자동 전환하는 특약은 배타적 사용권을 받으며 환리스크 관리의 니치마켓을 개척했다. 남성 난임 보장을 PSMA PET 검사비, 정자채취 지원, 특정 수술 보장 등 의료행위 단위로 끌어내린 구성은 여성 위주로 편중돼 있던 기존 지원 구조의 공백을 메웠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생보·손보를 가리지 않고 ‘보장의 디테일’을 앞세운 상품 혁신이 업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배타적 사용권 경쟁이 가열되는 배경에는 수익성, 규제, 채널 구조의 삼중 압박이 깔려 있다. 자동차·실손 등 대형 라인은 요율 인상 한계와 손해율 변동이 공존하고, 방카슈랑스와 GA 채널에서는 가격 경쟁이 일상화돼 신상품의 차별성이 없으면 유지율과 마진이 빠르게 악화한다. 배타적 사용권은 통상 6~12개월의 독점 기간 동안 가격과 보장 설계를 주도할 수 있어, 같은 마케팅 비용으로 더 높은 체감 판매력과 초기 점유율을 확보하는 지름길이 된다. 디지털 청구, 제휴 데이터 연동, 자동보상 등 운영 혁신과 묶일 때 운영비 절감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다만 위험요인도 분명하다. 첫째, 파편화된 담보의 난립이다. 차별점이 미세한 특약이 무분별하게 늘면 심사와 청구가 복잡해지고, 고객의 이해도와 민원 리스크가 커진다. 둘째, 규제 정합성의 문제다. 행동교정이나 지연 보상 등 새로운 급부 방식은 표준약관과 검증 지표의 선행 정비가 필요하다. 셋째, 지속가능성이다. 배타적 기간 종료 후 유사 상품이 빠르게 쏟아지면 가격 경쟁으로 흘러 혁신 프리미엄이 급속히 희석될 수 있다. 초기 독점의 이점을 유지하려면 아이디어를 데이터, 제휴, 시스템으로 고착화해 따라 하기 어려운 운영 역량으로 바꿔야 한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신상품의 실사용률, 디지털 연결성, 언더라이팅 정교화, 채널 파워, 사후관리 체계를 함께 본다. 실제 청구 데이터가 쌓이는지, 교통·결제·의료·반려동물 플랫폼과의 제휴로 자동 인입과 자동보상이 가능한지, 새로운 위험의 빈도와 강도를 요율에 얼마나 정밀 반영하는지, 배타적 기간 동안 빠르게 스케일을 키울 유통력이 있는지, 보장 이후의 관리 서비스를 자체 또는 제휴로 제공할 수 있는지가 핵심 체크포인트다. 중장기적으로는 보험료 수입과 손해율, 유지율뿐 아니라 민원·환불률 등 품질 지표의 개선 폭이 혁신의 진정성을 가르는 잣대가 될 것이다.
결국 배타적 사용권 전쟁은 아이디어의 경쟁으로 시작해 운영의 경쟁으로 끝난다. 고령화, 1인 가구 확산, 반려동물 증가, 도심 교통 혼잡 등 한국형 생활리스크는 더 세분화될 전망이다. 누가 먼저 고객의 불편을 데이터로 정의하고, 보험 언어로 번역해 지속가능한 손익 모형으로 고정시키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연말까지 이어질 특허형 보험 각축전의 승자는 새로운 담보를 얼마나 빨리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똑똑하게 굴리고 오래 유지하느냐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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