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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12> 마음을 치유하는 ‘정서 곤충’

매미는 요란하게 여름을 배웅하고
풀벌레 조신하게 가을을 마중하여
뭇사람 깨우쳐 주니 고맙구나, 곤충아
한양경제 2024-08-20 14:24:19
신사임당의 그림 ‘오이와 개구리’. 왼쪽 밑에 귀뚜라미가 보인다. 이효성

여름은 곤충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곤충은 주로 여름에 성장하고 번식하기 때문이다. 곤충은 그 종의 수가 200~250만 가지나 될 정도로 실로 다양하다. 곤충은 파리나 모기처럼 사람이나 짐승에게 질병을 옮기거나 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벌처럼 꽃가루받이를 통해 식물의 번식을 돕기도 하고, 소똥구리처럼 유기물의 분해를 통해 환경 정화에 기여하기도 하고, 누에처럼 인간에게 실용성 물질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 메뚜기를 비롯 대부분 곤충들이 다른 동물들의 먹이로서 단백질의 공급원이 되기도 하고, 상당수 곤충들이 미래의 인간의 식량 자원으로 연구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곤충들 가운데 인간에게 친숙한 것은 의외로 적다. 아마 인간에게 친숙한 곤충으로는 벌, 나비, 잠자리, 메뚜기, 매미와 풀벌레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매미와 풀벌레는 정서적으로 매우 친근한 곤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인간에게 친근한 것은 그들이 발성기관을 가지고 있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상당히 큰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사실, 매미는 나무가지 위에 붙어서 수액을 빨고, 풀벌레는 흔히 풀숲이나 어둑한 땅에서 서식하는 데다 모두 보호색을 하고 있기에, 이들을 눈으로 보거나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소리를 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상당히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존재를 깨닫게 되어 친숙하게 된 것이다.

매미나 풀벌레나 모두 짝짓기를 위해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는 소리를 낸다. 이들의 수컷은 종족 유지를 위해 자기 종족의 암컷이 반응할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는 동시에 인간의 청각에도 닿아 인간에게 정서적 반응도 일으킨다. 무더운 여름의 적막을 뚫고 들리는 이들의 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절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등 적지 않은 정서적인 반응을 촉발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정서(情緖) 곤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 곤충의 울음소리에 관한 많은 서정시들은 이들이 정서 곤충임을 입증한다.

“오랜 세월 땅속에서 몸부림치다/한여름 며칠쯤은 하늘을 바라/허물을 벗어놓고 울고 싶었을 것이다”[정희성, 〈매미〉 중에서]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김기택,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중에서]

매미의 수컷은 복부의 발음기관으로 작은 소리를 만들면 이것이 뱃속의 울림통에 공명되어 북처럼 상당히 큰 소리가 된다. 그래서 수많은 매미들이 일시에 울어대면 온 동네가 시끄러워진다. 매미의 애벌레는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진을 빨아먹고 자라다가 대체로 3~7년 만에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약 1~3주 동안 사는데 이 사이에 짝짓기를 해야 하기에 필사적으로 운다. 그 때문에 울림통이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매미는 7월과 8월 무더운 때 집중적으로 출현하여 일시에 울기에 낮에 숲이나 공원과 같이 나무가 많은 곳에서는 이들의 소리만으로 사위가 요란하다. 요란한 매미 소리에 사람들은 한여름이 왔음을 그리고 한동안은 그 소리를 벗 삼아 지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시절의 변화를 새삼 느끼곤 한다.

소리를 내는 풀벌레들은 대체로 메뚜기목 여치류와 귀뚜라미류 곤충들이다. 이들의 수컷들은 좌우의 앞날개를 서로 부딪쳐서 현악기에 가까운 마찰음을 낸다. 마찰하는 날개의 한쪽은 줄칼 모양의 시맥(翅脈)이 현에 해당하고 이 시맥을 마찰하는 반대쪽 날개 부분은 활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는 가녀린 ‘깽깽이’ 소리와 유사하다. 이들의 소리는 낮에는 매미 소리에 치여서 잘 들리지 않지만 매미가 울지 않는 밤에는 잘 들린다. 이들의 소리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 주이지만, 영역 주장이나 싸움이나 교미를 위한 것도 있는데 그 용도에 따라 소리가 상이하다고 한다. 풀벌레는, 특히 귀뚜라미는, 그 소리가 가냘프고 아름다워 그 소리를 감상하기 위해 기르기도 하는 대표적인 정서 곤충이다.

매미는 대체로 7월부터 9월 초까지 찌는 무더위 속에서 요란하게 울며 존재를 과시하다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따라서 매미 소리는 무더위를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고 여름이 끝나가는 소리기도 하다. 요란하던 매미로 하여 우리는 존재의 무상함에 대해서 그리고 시절의 어김없는 바뀜에 대해 깨닫게 된다. 반면에 풀벌레, 특히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알기는 (음력) 7월 귀뚜라미”라는 속담처럼, 주로 늦여름에 시작되어 가을로 이어진다. 그래서 풀벌레 소리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미가 사라지면, 풀벌레 소리가 더 잘 들린다. 그때 섬돌 밑에서 들리는 가늘고 처량한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며 까닭도 없이 우리의 심금을 울려 막막하고 처연하게 만든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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